[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핵발전소 돈 때문에 빚구덩이에 빠진 원전마을

관리자
발행일 2023-05-24 조회수 21


이상홍 사무국장이 <민중의 소리>에
칼럼 [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를 연재합니다.
https://vop.co.kr/A00001633528.html



핵발전소 돈 때문에 빚구덩이에 빠진 원전마을



월성원전 코앞에 있는 양남면 나아리는 손꼽히는 부자 마을이었다. 월성원전에서 나오는 각종 지원금이 많기 때문이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때도 나아리는 66억 5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지나가던 개도 1만 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속언은 나아리에 딱 어울렸다. 그렇다고 주민들 손에 직접 돈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마을에서 요청하는 개발사업에 한수원이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지원금이 사용된다.
부자 마을 나아리에 최근 흉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요금 1,200만 원 체납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은행 이자 6,000만 원이 체납되어 경매 예정 고지서가 날아왔다. 국세가 미납되어 압류 예고장이 날아왔다. 알짜배기 부자 마을이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됐다.
사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빚구덩이의 내막이 뒤늦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7년간 권력을 독점했던 이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이장이 선출되면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부패의 장막이 걷히는 중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마을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아리 주민들은 작년 말부터 이장 교체를 준비했다. 마을 회계를 공개하지 않는 옛 이장의 3선을 저지하기 위해 면사무소 앞에서 삭발 및 농성을 했다. 옛 이장이 일방적으로 실시한 선거를 거부하고, 무효 투쟁을 벌여 재선거를 실시했다. 3월 21일 실시한 재선거에서 개혁 후보가 17표 차이로 옛 이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보통 농촌 마을은 이장을 못 구해서 골머리를 썩인다. 그러나 원전마을은 앞다투어 이장을 하겠다고 나선다. 나아리 이장 선거도 매우 치열했다. 개혁 후보는 7년 장기 집권을 끝내기 위해 마을 중앙에 크레인을 세워 두고 그곳에 홍보 현수막을 높이 걸었다. 선거 사무소도 차리고, 집집마다 홍보물을 배포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대통령 선거보다 마을 이장 선거가 더 치열했다고 말한다.
원전마을은 이장 선출을 두고 왜 이렇게 갈등을 겪을까? 사람들은 돈이 문제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냥 돈이 아니고 한수원이 집행하는 ‘사업자 지원사업비’ (이하 지원사업비) 때문이다. 한수원이 직접 집행하는 지원사업비는 발전량 1kW(킬로와트)당 0.25원이다. 월성원전의 지원사업비 규모는 연간 약 70억 원에 이른다. 이것 외에 핵발전소 수명연장,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증설 등의 대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백억 원의 보상금이 인근 마을과 경주시에 주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지원사업비의 집행이 구리다는 사실이다. 부자였던 나아리가 빚구덩이에 빠진 것도 한수원의 지원사업비 때문이다. 지원사업비 66억 5천만 원을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 건축에 투자했으나, 공사비가 눈덩이로 불어 농협에서 27억 5천만 원 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나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대출금 이자도 못 갚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 건축에 한수원이 너무 성급하게 지원사업비를 집행했다는 비판이 있다. 옛 이장이 대표적인 친원전 인사였기 때문에 한수원이 덮어놓고 지원사업비를 집행했다는 지적이다. 신임 이장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 사업에 비리 의혹도 제기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지원사업비가 한수원 입맛대로 친원전 마을과 친원전 자생단체에 많이 돌아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최근 양남면 자생단체들이 주민들의 삼중수소 방사능 피폭을 성토하는 현수막을 100여 장 게시했다. 그러자 한수원이 각 마을에 지원사업비 집행 중단을 통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법에 따라 지원하는 예산을 노골적으로 친원전 여론 조성에 활용하는 작태다. 지원사업비의 대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지원사업비는 한수원과의 친소 관계를 떠나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곳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핵발전소의 안전 확보는 무엇보다 인근 주민의 감시가 중요하다. 그러나 한수원의 지원사업비는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 일차적인 감시 역할을 못 하게 했다. 또한 원전마을 주민의 분열과 반목을 불러일으킨 주범이었다. 이제 지원사업비 집행에서 한수원이 손을 떼게 하고, 경주시가 직접 집행하거나 기금운용 재단을 설립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도록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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