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재난자본주의와 K-택소노미

관리자
발행일 2022-10-22 조회수 18


이상홍 사무국장님이 <민중의 소리>에
[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연재합니다.
https://www.vop.co.kr/A00001621538.html



재난자본주의와 K-택소노미



1997년 IMF의 기억이 생생하다. 외환위기 국난을 맞아 서민들은 줄을 서서 돌 반지, 결혼반지를 기증했다. 나랏빚 갚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들이었다. 그 난리통에 돌아온 것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공기업의 민영화(재벌 사유화)다.
나오미클라인은 [쇼크독트린]에서 재난자본주의론을 펼쳤다. 대형 홍수, 테러, 전쟁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공황에 빠지고 기존 사회시스템은 작동을 멈춘다. 자본은 이 기회를, 직접 돈벌이 수단으로 삼거나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는 체제 구축에 활용한다. 결국 자본주의는 재난을 먹고 자란다.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고하게 심어놓은 1997년의 IMF 사태도 재난자본주의에 해당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재난자본주의가 또다시 우리 사회에 엄습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핑계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빠르게 핵발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K-택소노미’까지 등장했다.
유럽연합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녹색 에너지를 별도로 분류해서 금융지원을 한다. 바로 녹색분류체계인 택소노미(Taxonomy)다. 발전소는 계획, 건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자본이 소요됨으로 국가적 금융지원이 필요하다. 앞으로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는 발전소는 투자받기 어려워 시장에서 자연 도태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정부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마련하면서 핵발전을 제외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핵발전을 포함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다시 마려하고 있다. 일명 K-택소노미다.
최근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떨치면서 K-컬쳐의 자부심이 높지만, ‘K’가 붙어서 불행해진 역사도 있었다.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k’의 악몽을 소환하고 있다.
지난달 9월 24일 서울 한복판에서 3만5천명의 시민이 모여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했다. 과거 기후위기 행사와 비교하면 규모가 10배 이상 커졌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기후위기에 올라타 핵발전 부흥을 위한 K-택소노미를 추진하고 있다.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32.8%까지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1.5%로 낮출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비교하면, 핵발전은 8.9% 더 올리고, 재생에너지는 8.7% 줄였다.
핵발전은 -과대포장 된 탄소배출 저감을 눈감아 주더라도- 기후위기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을 위해 205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 중단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2019년 기준으로 발전량 4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을 핵발전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최소 37기의 핵발전소가 추가로 필요하다. 핵발전소 건설 기간을 10년으로 잡으면 2040년까지 37기의 핵발전소를 착공해야 한다. 매년 1.8기 착공이다. 물론 노후 핵발전소를 30년 이상 수명연장하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재앙이다.
핵산업계는 유럽연합도 택소노미에 핵발전을 포함했다고 둘러댄다. 유럽연합은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하고, 후쿠시마 같은 중대사고에도 안전한 핵연료를 사용할 경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조건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고 한국의 핵발전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0월 7일 유럽사법재판소에 유럽연합의 택소노미 결정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핵발전을 택소노미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소송이다. 더 많은 유럽 국가가 소송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9월 24일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기후정의행진’에 월성핵발전소 주민들도 참여했다. 주민들이 행진하면서 내건 펼침막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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